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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 LAB: Roger Vivier
왕실 가문이 선택한 웨딩 슈즈



일생을 신발 하나에 파고들어 최고의 우아함, 혁신적인 디자인, 완벽한 곡률로 독창성을 인정받은 슈메이커 로저 비비에. 그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신발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다. 드러내지 않아도 농도 짙은 우아함이 배어 나오는 그의 동화적 상상력을 지금부터 천천히 음미해보길.


기본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천재


1925년 프랑스 파리의 시립 미술 학교,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서 조각을 공부했다. 졸업 후 지방으로 가 제화 공장의 견습생으로 제화공 일을 배웠으며 신발 공장 외 다른 여러 공장에서도 근무하며 무역의 모든 측면을 직접 부딪히며 배워나갔다. 그렇게 로저 비비에는 장장 9년의 기나긴 시간을 바쳐 구두 연구와 신발 사업에 대한 기본기를 마치게 된다.




총 9년의 시간 동안 신발 사업에서 경력을 쌓았던 그. 하지만 제화에 대한 로저 비비에의 열정은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936년 독일 가죽 공장의 자회사인 Laboremus의 제안으로 어떤 색상의 가죽이 잘 팔릴지 트렌드를 예측하는 업무를 담당하며,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선 가죽으로 만들 수 있는 신발을 스케치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주어진다고 했는가. 물랑 루즈, 카지노 드 파리, 폴리 베르제르 극장을 자주 왕래하던 로저 비비에는 당시 유명했던 프랑스 출신 샹송 가수 미스탱게트(Mistinguett)와 가수이자 댄서 조세핀 베이커(Josephine Baker) 두 명의 엔터테이너를 위해 첫 맞춤 신발을 디자인하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된다.


Roger Vivier 2021 FW




최정상 브랜드 Dior과 손을 맞잡은 로저 비비에


이러한 성공에 이어 그는 최고의 패션 엘리트를 위한 고급 신발을 제작하기 위해 1937년, 파리 루아얄(Rue Royale)거리에 첫 번째 부티크를 오픈하며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블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브랜드 Roger Vivier.

로저 비비에는 당시 내로라하는 패션 하우스와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신발을 디자인하곤 했다. 1953년부터 1963년까지 Christian Dior 하우스를 위해 10년 동안 담당했던 슈메이커 역할이 그의 대표적인 커리어다. 신발을 ‘단순히 발을 감싸거나 보호하기 위해’라는 물리적, 실용적 관점에서 멀리 벗어나 ‘정체성의 주제’ 관점에서 신발을 들여다보았던 로저 비비에는 신발을 그 어떤 영롱한 보석보다 더 보석처럼 아름답게 만들어 선보였다. 가장 대담한 형태와 기발한 모티프로.




1950년대와 60년대 로저 비비에의 정교한 작업물들을 기록한 출판물 Dior by Roger Vivier.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은 이렇게 말했다. “내 친구 로저 비비에는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발을 실현하기 위해 일하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크리스찬 디올’다운 여성을 완성하기 위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 결정적 인물이다.”

로저 비비에와 크리스찬 디올은 파트너십 전 과정에 걸쳐 신뢰와 친밀감을 공유하며, Christian Dior 스타일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Dior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슈즈 디자이너와 제휴한 사례는 유일하게 로저 비비에라고 하니 크리스찬 디올에게 그는 얼마나 남다른 존재였고, 막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다.





크리스찬 디올은 은방울 꽃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로 애정했냐고 물으면 그 꽃을 행운의 부적으로 여길 정도였다고 하니 은방울 꽃에 대한 애정이 넘치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 사실을 안 로저 비비에는 신발 장식 요소의 모티브로 은방울 꽃을 자주 사용했다. 은방울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보았을때 이건 무슨 꽃이지 호기심을 가질 정도로 고혹적인 자태를 뽐낸다.





1953년 7월 가을 겨울 Dior 패션쇼로 데뷔 무대를 알린 로저 비비에. Dior 슈즈 아틀리에 전속 디자이너로 10년간 몸담으며 그가 빚어낸 신발이라는 조각들은 오늘날까지 Dior 하우스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많은 여성의 위시리스트 아이템으로 손꼽히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의 J'Adior 슬링백 또한 로저 비비에로 부터 영감을 받았다니.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그의 완벽한 디자인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로저 비비에의 오리지널 스타일을 기반으로 아티스틱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재창조한 Dior 62-22. 새로운 펌프스 구두가 공개되며 크리스찬 디올과 로저 비비에의 파트너십이 재조명받았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구두를 통해 로저 비비에의 유산에 경의를 표했으며, 과거와 미래를 연결한 셈이다.



로저 비비에, 황금기를 꿈꾸다.


1965년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추상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첫 컬렉션에 도입했다. 그렇게 세상에 발표된 이브 생 로랑의 몬드리안 컬렉션은 “최고의 컬렉션”으로 극찬받으며, 패션 신의 전설적인 업적으로 남았다. 그래서 몬드리안 컬렉션과 로저 비비에가 무슨 연관이 있다고? 의아함을 품었다면, 먼저 컬렉션 이미지를 들여다보길.





몬드리안 컬렉션, 칵테일 드레스와 완벽한 조합을 이루고 있는 Roger Vivier의 블랙 펌프스를 발견했다면 이브 생로랑과 로저 비비에가 어떤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증이 해소되었을 것.

칵테일 드레스의 심플한 재단, 기하학적인 선, 대담한 색상 구성과 걸맞은 신발을 스케치한 이브 생 로랑은 많은 제화공을 열일 재치고 로저 비비에를 택했다. 그렇게 그는 크리스찬 디올에 이어 이브 생 로랑과 함께 황금기의 포문을 연다. 몬드리안 컬렉션의 기하학적 패턴을 활용하기 위해 펌프스 전면에 큰 사각형 버클을 통합했으며 미니멀한 사각 버클은 오늘날 Roger Vivier의 아이코닉한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이브 생 로랑과 함께 공개된 클래식 펌프스는 당시 시즌 최고의 아이템으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의 인기를 받으며, 구두를 사기 위해 부티크 앞에는 수많은 여성이 장사진을 이뤘다.

이후 1967년, 프랑스 영화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카트린 드뇌브(Catherine Deneuve)가 영화 세브린느(Belle De Jour)에서 펌프스를 착용하며 로저비비에의 신발은 불후의 명성을 얻게 된다. 그렇게 성공을 이룬 구두는 영화의 이름을 따서 벨 비비에(Belle Vivier)로 불리며, Roger Vivier의 시그니처 스타일로 손꼽히는 모델이다.


Roger Vivier 슈즈를 착용한 카트린 드뇌브의 모습




스틸레토라는 이름의 위대한 공헌


Roger Vivier는 여성을 위한 다양한 스틸레토 힐을 제공한다. 유니크한 힐을 만드는 남다른 재능으로 50년대와 60년대 초반의 혁신을 이룬 로저 비비에에게 빼놓을 수 없는 건 스틸레토(Stiletto) 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체중을 지탱할 수 있는 강철 압출 막대가 개발되며 스틸레토 힐이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스틸레토 힐을 패션 신으로 끌어낸 건 다름 아닌, 로저 비비에.

1954년 당시 Dior에서 일하던 그는 구두 발뒤꿈치에 금속 막대를 삽입해 내구성을 높이는 아이디어를 내며 바라보는 것만으로 아찔함이 동반되는 스틸레토 힐을 대중화했다. 두껍고 투박한 나무 굽을 버리고 여성의 바디라인이 더욱 강조될 수 있도록 생각의 전환을 일으킨 로저 비비에의 스틸레토 힐은 전 세계적으로 즉각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가 없었다면 관능의 매력 스틸레토 힐이 지금과는 다른 형태와 모습으로 존재했을지도 모르겠다.





왕실 가문이 선택한 브랜드 로저 비비에

Roger Vivier의 슈즈 컬렉션은 전 세계 유명 셀러브리티를 비롯해 엄격하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왕실 가문에게도 선택받았다. 베스트 드레서로 꾸준히 언급되는 영국의 왕족, 윈저 공작부인 월리스 심슨(Wallis Simpson). 공작부인은 Roger Vivier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로저 비비에의 작품을 진정한 예술로 여겼다고 전해진다.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으로 즉위한 1953년 6월, 새틴 드레스와 실크 벨벳 가운 그리고 다이아몬드 2,868개가 세팅된 순금 크라운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부신 스타일로 영국 왕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의상을 선보였던 그 날. 엘리자베스 2세가 신고 있던 신발은 로저 비비에가 디자인한 골드 펌프스였다. 왕관을 연상시키는 백합 문양 모티프가 특징인 골드 펌프스는 67년 후, Roger Vivier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게라르도 펠로니(Gherardo Felloni)에 의해 ‘비비에 퀸 샌들’로 재해석 되었다.

로저 비비에는 영국 왕족을 위해 대관식 신발을 만든 유일무이한 프랑스 디자이너다. 엘리자베스 여왕 외에도 패션 아이콘으로 줄기차게 언급되는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 Onassis),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도 로저 비비에의 매력을 알아본 한 명의 고객이었다.


게라르도 펠로니의 ‘비비에 퀸 샌들’.




로저 비비에가 떠나고 변화된 것들

영원히 슈즈메이커로 남을 것 같았던 로저 비비에는 찬란한 유산을 남긴 채 1998년, 9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떠난 후 많은 제화공은 로저 비비에를 따라 하려고 하지만, 그를 뛰어넘는 기술과 디자인의 조합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로저비비에가 세상을 떠남과 동시에 Roger Vivier 또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Hogan, Fay를 소유하고 있는 디에고 델라 발레(Diego Della Valle)의 토즈 그룹(Tod’s Group)에게 인수되었다.

이후, 2003년 브루노 프리소니(Bruno Frisoni)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되어 브랜드를 되살리기 위한 창조 정신으로 쿠튀르에서 영감을 받은 실루엣의 신발 컬렉션을 선보였고, Roger Vivier는 다시 활기를 찾았다. 브루노 프리소니 이후 모든 주요 시장에서 성장세를 보였고, 국제적으로 총 40개의 매장을 보유하는 등 하우스를 부흥기로 이끌었다. 그렇게 장장 16년간 브랜드의 지휘봉을 잡았던 브루노 프리소니는 2018 FW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Roger Vivier를 되살리기 위해 바친 16년은 매혹적이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브루노 프리소니

브루노 프리소니에 이어 Roger Vivier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게라르도 펠로니. 이탈리아 투스카니에서 태어난 게라르도 펠로니는 건축가가 되려고 했으나, 신발 아틀리에를 운영하는 아버지의 권유로 신발과 액세서리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건축과 신발 디자인 사이의 구조를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며 입지를 다졌고, MIU MIU, Dior에서 경력을 쌓았다.





“저에게 Roger Vivier는 항상 제 작업의 참고 자료였으며, 로저 비비에는 완벽한 슈즈 마스터였다.”  -게라르도 펠로니

풍부한 디자인, 시선을 끄는 화려한 장식과 자수 그리고 다양한 스타일의 혼합을 즐긴다는 게라르도 펠로니는 Roger Vivier 컬렉션에 자신만의 취향을 덧입혔다. 깃털, 크리스털 및 진주로 악센트를 준 신발은 공작만큼이나 화려하고 압도적인 자태를 뽐낸다.






게라르도 펠로니는 반짝이는 큐빅을 구두에만 한정 짓지 않았다.

쿠튀르의 미학과 스포츠를 결합한 비브 런 스니커즈(Viv' Run)는 Roger Vivier 최초의 스포츠화다. 밑창의 7cm 히든 힐과 통풍에 우수한 메쉬 패브릭, 네트 및 네오프렌 소재로 하이패션과 러닝을 우아하게 섞었으며, 신발 끈은 엘라스틱 밴드와 크리스탈 쥬얼리 장식의 버클로 대체해 독특한 대조를 이루도록 했다. 공개된 게라르도 펠로니의 비브 런 스니커즈는 공개와 동시에 브랜드의 베스트셀러 아이템으로 등극하며, 지금까지 다양한 디자인으로 계속해서 출시되고 있다.




실패 없는 웨딩슈즈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이든, 결혼식에 참석하는 일원이든 둘 중 하나라도 포함된다면 Roger Vivier를 더욱 눈여겨봐야 할지도 모른다. 웨딩드레스를 확보했다면 웨딩 슈즈에 관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터. 선택할 수 있는 웨딩 슈즈는 무궁무진하지만, 특별한 순간을 더욱 빛내줄 Roger Vivier 브라이덜 컬렉션을 살펴보자.





신발을 만드는데 일생을 바쳤던 로저 비비에. 그는 완벽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으며 생전에 남긴 작업물은 가장 창의적인 신발 중 하나로 남아있다. 그는 1954년 최초의 스틸레토 힐을 만들었고 ‘구두’라는 매체로 여성을 더욱 담대하고 강인하게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패션계를 영원히 바꿔 놓을 그의 수많은 업적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계속해서 진화하는 Roger Vivier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