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1950s Fashion Icons
오늘을 내다본 50년대 트렌드세터들
평범한 흰색 티셔츠조차 그들이 입으면 로망과 판타지가 담긴다. 다음 세대를 위한 변함없는 영감의 원천이 된 스타일 아이콘 3인 제임스 딘, 스티브 맥퀸, 말론 브란도에 대하여.
갈망의 대상 제임스딘
홀연히 나타나 우주의 별들처럼 강렬한 스파크를 일으키고 사라진 신기루 제임스 딘(James Byron Dean). 그는 뻔한 전개의 클리셰가 적절히 섞인 허구의 한 장면처럼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진한 24년의 짧은 생을 살았다.
제임스 딘은 단 3편의 필모그래피로 영화 산업에 확고한 발자취를 남겼는데, 그의 대표작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은 오늘날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빨간 해링턴 재킷의 출처이기도 하다. 치기 어린 반항심으로 가득한 청년 짐 스타크 역을 맡았던 제임스 딘의 영화 속 캐릭터와 패션 스타일은 1950년대 미국 전역의 모든 세대를 압도했다. 폭죽처럼 터져버린 그의 어마어마한 인기는 일반적 차원을 넘어 한 시대를 풍미한 아이콘으로 남게 되었다.
짙은 눈썹, 손으로 마구 쓸어올린 듯한 스윕백 헤어, 나른하고 장난기 넘치는 표정과 무심하게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까지. 단순히 잘생긴 외모라고 칭하기엔 시선을 붙잡아두는 특별한 마력이 넘쳤던 제임스 딘. 비록 고독과 두려움 속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오리지널리티와 출중한 연기 실력은 사진과 작품으로 남아 우리 곁을 자유로이 유랑하고 있다.
제임스 딘의 시력은 물체를 겨우 흐릿하게 식별할 수 있는 정도의 지독한 근시로 안경을 쓰지 않으면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냥 지나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사진 속 그의 표정을 자세히 보면 은근한 눈 찌푸림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당사자인 제임스 딘은 흐릿하게 보이는 세상에 굉장한 불편함과 고충을 겪었겠지만, 시력이 좋았다면 안경을 썼을 때만 나오는 특유의 소년미와 지적인 무드를 쉽사리 볼 수 없었다고 생각하니 굉장한 아쉬움이 밀려온다.
원형 프레임의 안경을 주로 착용했던 제임스 딘. 캐주얼룩 묘미를 더해주는 요소다.
제임스 딘은 심플하고 편안한 옷을 선호하며 진정한 패완얼 면모를 입증했다. 흰색 티셔츠와 데님 그리고 가죽 재킷으로 구성된 스타일링은 일명 ‘제임스딘 룩’으로 불리며 수많은 남성들의 모방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스타일 아이콘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따라 하고 싶은 욕구를 부담 없이 끄집어냈다는 것 아닐까.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본 적 없더라도, 아마 이 사진은 한 번쯤 접해본 적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의 스마트폰 앨범 속 혹은 SNS 피드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을지 모를 제임스 딘의 롱 코트 이미지 말이다.
무릎을 덮고 길게 내려오는 클래식한 더블브레스티드 코트를 착용한 제임스 딘은 언제 보아도 감탄을 자아낸다. 딱 10년 뒤에 찾아봐도 느끼는 감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처럼 질림이 없다.
제임스 딘의 장례식에는 600명의 조문객과 2,400여 명의 팬들이 모였으며, 사후에도 일주일에 5,000~6,000통의 팬레터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미국 광부들이 작업복으로 입었던 청바지를 모두가 입고 싶어 하는 패션 아이템 반열에 올랐던 이유도, 도전이 망설여지는 과감한 빨간 재킷을 도전할 수 있게 용기를 쥐어준 것도 남성 패션의 유행을 선도했던 1950년대의 트렌드 세터 제임스 딘이 존재했기 때문 아닐까.
"live fast, die young”.
-제임스 딘
킹 오브 쿨 스티브 맥퀸
할리우드의 유일무이한 존재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 그는 거친 오프로드를 폭발적으로 달리는 12기통 엔진처럼 누구보다 뜨겁고 묵직한 생을 살았다. 실제 그는 스피드 마니아로 200대가 넘는 모토 컬렉션을 소유했으며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은 스티브 맥퀸에게 단순히 탈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그렇다면 이제 궁금해진다. 스티브 맥퀸은 어떤 패션 아이템과 함께 그토록 사랑하는 모터사이클을 즐길지 말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바이커 스타일의 초석, 가죽 재킷 혹은 내구성이 뛰어난 청바지, 빈티지한 광택의 왁스 재킷을 상상했을 터.
그러나 예상 밖으로 맥퀸은 치노 팬츠를 입었다. 모터사이클과 치노 팬츠라니, 의외의 와인 페어링을 만난 것처럼 두근거리는 조합이다. 이미지를 통해 먼저 그 비주얼을 감상해 보시라.
견고하고 클래식한 치노 팬츠는 스티브 맥퀸의 옷장 속 필수 아이템이었다. 치노는 청바지와 데님 원단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면 소재의 트윌로 만든 심플한 디자인의 팬츠로 캐주얼한 스타일 연출에 탁월해 1970년대에는 프레피룩 아이템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앞서 소개한 제임스 딘 역시 ‘에덴의 동쪽’ 영화에서 치노 팬츠를 착용한 바 있다.
195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일 트렌드 아이비 룩(Ivy Look)을 말하기 전, 스티브 맥퀸의 존재를 주목해 보자. 파격적이고 반항적인 이미지로 할리우드 스타 반열에 이름을 올린 반면, 그의 아이코닉 아이템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건 3피스 슈트, 치노팬츠, 처커 부츠, 숄 카라 가디건 등의 ‘클래식 패션’이다.
발목 높이와 2~3개의 아일렛의 오픈 레이싱이 가장 큰 특징인 처커 부츠는 제 2차 세계대전, 영국군 부대 사이에서 주로 착용되던 군용 신발이었으나 견고한 내구성과 심플한 디자인으로 민간인에게 닿기 시작했다. 그 무렵 스티브 맥퀸은 헤링본 재킷, 슈트와 함께 영화를 비롯해 카메라 밖 일상 패션으로 부츠를 활용한 교과서 같은 스타일링을 보이며 처커 부츠를 더욱 조명 받게 했다.
누구나 즐겨 입는 캐주얼룩을 자신만의 멋으로 승화시킴에 능통했던 스티브 맥퀸. 그 요령을 물어본다면 세 가지로 답해줄 것 같다.
1.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여유로움
2. 자신감
3. 나다운 것을 찾고 즐기는 것
이런 그를 동경하며 만든 브랜드가 있었으니, 바로 리얼 맥코이(The Real McCoy's)의 창립자 오카모토 히로시(Okamoto Hiroshi)가 만든 토이즈 맥코이(Toys McCoy)다. 오카모토는 유년기 시절, 형과 함께 당시 가장 화제였던 영화 대탈출(The Great Escape, 1963)을 관람하게 되는데 그 계기를 시작으로 내면의 변화뿐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요소로 스티브 맥퀸의 동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스티브 맥퀸이 대탈출에서 착용했던 A-2 플라이트 재킷을 따라 입고 싶었던 오카모토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찮았기에 비슷한 재킷을 구매해 포켓을 꿰매 입는 것을 필두로 일본 매거진 뽀빠이(POPEYE)에서 한정 300벌의 플라이트 재킷을 판매하거나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스티브 맥퀸의 모습을 작업물로 담아냈다. 결국 1996년에 토이즈 맥코이를 설립해 자신의 영웅이자 동경의 대상 스티브 맥퀸이 착용했던 재킷, 헬멧, 티셔츠 등을 복각하여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다.
Toys McCoy perfect book
활동하는 작품마다 매번 흥행을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간 스티브 맥퀸. 사실 그는 화려한 성공과는 대비된 어두운 가족사를 갖고 있다. 알코올 중독의 매춘부 어머니에게 버림받아 미주리 시골의 한 농장에서 조부모와 삼촌의 손에 길러졌으며, 그의 새 의붓아버지는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9살 때 집을 떠나 거리의 갱단과 어울리며 범죄 행위를 저질렀고 부분 청각장애와 난독증을 겪으며 굴곡진 삶을 살아왔다.
다른 이들은 쉽게 겪을 수 없었던 쓰라린 경험은 그의 연기 인생을 더욱 극적으로 빛나게 했다. 스티브 맥퀸이 스타일 아이콘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건 단순 패션 스타일뿐만이 아닌, 빠르고, 대담하고, 무모했던 그의 라이프 스타일이 함께 내재되어 있기 때문 아닐까.
갓파더 말론 브란도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 1957)에서 음주와 도박 등 난폭한 행동을 일삼는 나쁜 남자, 스탠리 코왈스키(Stanley Kowalski) 역을 맡은 말론 브란도는 이 작품을 통해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더 맨(The Men 1950) 데뷔작에 이어 단 두 번만의 필모그래피로 2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며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가 세상에 남긴 발자취는 60년에 걸친 배우 경력 하나만은 아니었으니. 가죽 재킷, 흰색 티셔츠, 청바지까지 과시 없이 담백한 말론 브란도의 패션 스타일은 여전히 남아있다.
남녀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젠더리스 패션’ 장르가 트렌드인 시대가 도래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성별의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형화된 패션이 미덕이었다. 말론 브란도는 터프한 모습과 반항적인 이미지로 ‘남성성’의 기준점이 되었고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흰색 티셔츠다.
1950년대는 흰색 티셔츠를 언더셔츠(Undershirt), 즉 속옷으로 인식했었다. 지금은 누구나 평범하게 입는 흰색 티셔츠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입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하니, 언더셔츠를 그것도 아주 타이트하게 입고 나온 말론 브란도를 처음 보았을 때 사람들은 압도적인 비주얼에 감탄을 금치 않았을 게 분명하다.
티셔츠는 소매를 짧게 설정해 그의 잘 다듬어진 이두근을 더욱 돋보이게 했으며, 실루엣이 드러나는 슬림한 핏으로 그의 마초적인 야생미를 강조했다. 항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영화감독은 티셔츠를 수축시키기 위해 세탁과 커팅, 바느질 과정을 거쳤다고. 그렇게 탄생한 말론 브란도의 흰색 티셔츠 스타일은 지금 보아도 관능적이기 그지없다.
보수적인 성향을 띄고 있던 1950년대 미국에서 젊은이들의 반체제 상징이 되었던 영화 위험한 질주(The Wild One, 1953). 그리고 오토바이 갱단의 우두머리 역을 맡은 말론 브란도의 아이코닉 스타일.
그가 입었던 제품은 지퍼 디테일이 도입된 최초의 가죽 재킷 쇼트(Schott NYC) 퍼펙토(Perfecto)로 당시 이 재킷의 소매가는 50달러 상당이었다고 한다. 시간당 50센트를 버는 주유소 직원이라면 100시간 이상 일해야 겨우 살 수 있었기에 미치도록 갖고 싶은 동경의 아이템이었을 것. 쇼트 퍼펙토 재킷은 이후로 제임스 딘, 펑크록의 전설 라몬즈(The Ramones), 섹스 피스톨즈(The Sex Pistols)와 같은 록스타들의 유니폼으로 자리 잡으며 그 인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미국영화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AFI)에서 선정한 5대 영화계 전설 중 한 명으로 손꼽힌 말론 브란도. 아카데미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던 그는 청중에게 메소드 연기를 보인 최초의 배우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걸작 영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감독의 대부(Mario Puzo's The Godfather, 1973) 주인공 돈 코를레오네역을 맡은 그의 정교한 테일러링 아웃핏도 함께 들여다보길.
그들의 아이코닉 스타일은 시대의 패션을 정의했으며,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멋진 신세계를 선물했다.
다시는 볼 수 없기에 더욱 그리운 이들을 기억하며 이번 계절에는 흰 티셔츠와 가죽 재킷을 질리도록 입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