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Fashion and Tadao Ando
모두가 추앙하는 건축 히어로
안도타다오는 소위 말하는 무스펙, 비전공자 출신의 건축가다. 그런 그는 건축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고 영예로운 상 ‘프리츠커상’을 품에 안으며 건축계라는 판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세상이 알아주는 규격화된 스펙과는 거리가 멀었던 안도 타다오. 그러나 그가 걸어온 자전적 경험의 힘은 누구보다 절실하고 견고하다.
건축계뿐만 아니라 패션과 밀접한 영역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한 안도 타다오의 다양한 스토리를 살펴보자.
안도 타다오가 억만장자 보스에게 쥐어준 꿈
지난 1월, 파리에 위치한 미술관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 돔 아래, 원형 홀에서는 SAINT LAURENT 2023 FW 컬렉션이 한창이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는 2023 SS 맨즈 컬렉션을 모로코의 광활한 아가파이 사막에서 그야말로 영화에서 나올 법한 비주얼을 담아내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그렇게 후속 컬렉션에 대한 궁금증은 자연스레 기대감으로 번졌고 안토니 바카렐로는 파리의 부르스 드 코메르스 미술관을 대답으로 제시했다.
안토니 바카렐로의 대답을 100% 이해하기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
그는 GUCCI, BOTTEGA VENETA, BALENCIAGA 등을 소유한 프랑스 럭셔리 패션 그룹 케링(Kering)의 창업주이자, 프랑스에서 가장 부유한 자수성가 억만장자다. 또한, 세계에서 손꼽히는 아트 컬렉터이기도 하다.
뭐든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억만장자 프랑수아 피노에게도 방대한 꿈이 있었으니. 무려 50년 넘게 수집한 10,000점 이상의 컬렉션을 대중과 공유하는 것이다.
억만장자 보스 프랑수아 피노는 긴 꿈을 현실로 실현하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부르스 드 코메르스를 피노 컬렉션으로 물들이기 위해 미술관으로 50년 장기 임대한다. 한때 파리 증권 거래소의 본거지이자 가장 최근에는 도시 상공회의소로 이용된 부르스 드 코메르스는 미술관으로 개관하기 위해 완전한 개조와 변형이 필요했다. 그런 막중한 프로젝트를 맡은 건축가는 다름 아닌 ‘안도 타다오’.
50년 이상 현대 미술에 열정을 바쳐온 억만장자 사업가와 전 세계 수많은 미술 애호가의 기대감에 부응하기 위해 그는 몇 날 며칠을 무거운 중압감과 심리적 압박에 시달렸을까.
걱정도 잠시, 안도 타다오는 “강력한 아키텍처를 만들고 싶다.”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매진했다.
프랑수아 피노와 안도 타다오
안도 타다오는 400년 역사에 경의를 표하며 현대 미술의 공간이자, 파리 예술의 진원지로 탈바꿈시켜놓았다. 채광 창에서 나오는 일광이 건물 내부 전체에 고르게 분산되도록 30피트 높이의 콘크리트 실린더를 삽입했으며, 모든 층을 연결하는 중심점 역할의 나선형 콘크리트 계단을 설계했다.
총면적 1만 500㎡, 3,176평에 달하는 부르스 드 코메르스의 리노베이션 작업은 3년이 소요되었으며 약 1억 800만 유로의 비용이 발생했다고 전해진다. 현재까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물 중 가장 큰 프로젝트다.
“그는 전통에 대한 존중과 현대성의 요구를 조화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프랑수아 피노
꿈의 산물 부르스 드 코메르스 미술관은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손길을 거쳐 세계적 명소이자 새로운 예술 메카로 거듭났다. 안도 타다오 색채로 가득 채운 공간과 억만장자 보스의 욕망을 자극한 컬렉션의 만남이라니,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지 아니한가.
안도 타다오, 의외의 반전 인맥
프랑수아 피노는 패션과 시대를 초월한 뮤지엄을 원했다. 그리고 안도 타다오는 프랑수아 피노의 로망을 실현해낼 수 있는 건축가였다. 현재 이 둘의 관계는 프로젝트를 함께한 비즈니스 파트너 그 이상이다.
‘유사성’은 사람 간의 관계를 만들어낼 때 크게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하지 않았던가. 프랑수아 피노와 안도 타다오는 1936년, 1941년으로 비슷한 출생 연도를 가졌으며, 인생의 길을 독학으로 걸어왔다는 큰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프랑수아 피노가 어느 매거진 인터뷰에서 말하길 “나는 안도 타다오의 엄격함, 디테일에 대한 집요함, 타협을 거부하는 탄력성을 좋아한다. 힘든 시간을 겪음에도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라며 남다른 유대감을 표현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통역가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지만, 표면에 드러난 대화를 넘어 서로의 신뢰와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국적과 언어의 장벽이 아니었을까.
매년 12개 이상의 컬렉션을 선보이며 엄청난 작업량을 유지했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그 또한 안도 타다오와 특별한 친분이 있었으니. 쉽게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둘의 연결고리는 어떻게 생겨난 걸까.
약 30년 전, 칼 라거펠트는 일련의 추상적인 이미지 그리고 서명으로 마감된 손 편지를 봉투에 담아 건축가 안도 타다오를 찾아간다. 안도 타다오는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칼 라거펠가 직접 손으로 적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했다. 몇 달 후,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개인 저택 중 하나로 언급되던 칼 라거펠트의 Rue de l’Université에 초대받으며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프랑수아 피노와의 첫 만남도 당시 칼 라거펠트의 소개로 이루어졌다고 하니, 안도 타다오가 칼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더라면 피노 컬렉션 현대 미술관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른쪽 이미지 칼 라거펠트의 아파트
독서광이었던 칼 라거펠트
칼 라거펠트는 많은 이들에게 패션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그의 창조적인 에너지는 많은 분야를 넘나들었다. “옷이 필요하듯 집도 필요하다.”, “굶주림과 갈증처럼 건축은 패션을 자극한다.”라고 말하며 건축 애호가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며 패션과 건축을 융합했다.
안도 타다오의 단순하고 꾸밈없는 공간은 칼 라거펠트에게 고요한 안식처였다. 둘의 의사소통은 대부분 책과 그림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칼 라거펠트는 매달 수십 권이 넘는 다양한 도서를 안도 타다오에게 보냈다고 한다.
왼쪽 이미지 칼 라거펠트 스튜디오 건축 스케치
오른쪽 이미지
Karl Lagerfeld: A Line of Beauty 전시 건축 스케치
안도 타다오와 칼 라거펠트는 1990년대 프랑스 비아리츠(Biarritz)에 쿠튀리에를 위한 작업실과 집을 설계했지만 건축 허가가 나지 않아 불행히도 실현되지 않았다. 칼 라거펠트는 생전 그 기회를 굉장히 아쉬워했다고.
하지만, 2019년 그가 세상을 떠나고 4년 뒤인 오늘날, 칼 라거펠트를 주제로 한 2023 멧 갈라(Met Gala) 전시 속 공간 디자인을 안도 타다오가 맡게 된 것. 안도 타다오는 이번 전시회를 위한 설계를 마치며 오랜 친구와 마지막으로 대화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였다고 속마음을 밝혔다.
죽음은 우리가 언젠가 떠나야 할 여행이지만 둘의 더 많은 협업을 볼 수 있었다면 하는 생각은 쉽게 지워내기 힘들다.
“저는 건축이 너무 많은 것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건축은 침묵을 유지하고 자연의 햇빛과 바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안도 타다오
칸예가 700억을 주고 구매한 집
최근 도 넘는 언행으로 연일 구설수에 휩싸인 칸예 웨스트(Kanye West)는 미화 5,730만 달러를 지불하고 캘리포니아 말리부 저택을 구입했다. 미니멀한 외관으로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저택은 안도 타다오가 미국에서 설계한 몇 안 되는 주택 중 하나다. 모든 층에서 말리부 바다 전망을 누릴 수 있으며, 현대 미술 컬렉션을 전시하는 아트 갤러리로도 사용되고 있다. 전국에 수많은 집을 보유하고 있는 칸예는 왜 하필 이 집을 선택했을까?
말리부 저택을 구입한 2년 전, 2018년 칸예 웨스트는 예술의 섬으로 불리는 일본 나오시마를 방문한다. 나오시마 섬에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 지추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미술관 내부에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세 명의 예술가 작품이 상설 전시되어 있다. 칸예는 나오시마를 방문한 것에 대해 “life-changing.”으로 묘사하며 제임스 터렐과 안도 타다오의 예술관에 푹 빠지게 된다.
지추 미술관에 위치한 제임스 터렐 작품
칸예는 한화로 약 700억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하고 말리부 집을 구매했다. 도대체 ‘왜’라는 의아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가 설계한 집에 살아보는 상상해 본 적 있는가?” 질문 하나로 지워질지도.
불완전함에 대한 찬가
안도 타다오는 노출 콘크리트의 귀재다. 모래, 돌, 시멘트, 콘크리트처럼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재료를 사용하여 기하학적 형태의 특정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그의 본질적인 의도다.
그런 의미에서 노출 콘크리트는 해체주의 패션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해체주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디자인을 사용하여 확대하고, 분해하고, 다시 겹겹이 쌓아 각 구성요소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평면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만든다.
©MARTIN MARGIELA 1996 SS, ©YOHJI YAMAMOTO 2023 SS, ©COMME DES GARCONS 1995 RTW
시간을 품은 안도 타다오
그리스 출신의 은세공가 소티리오 불가리(Sotirio Bulgari)가 설립한 브랜드 BVLGARI. 안도 타다오의 건축 작품에 영감을 받아 그와 함께 협업한 시리즈 옥토 피니씨모(Octo Finissimo)를 살펴보자. 안도 타다오가 디자인한 시계의 다이얼은 나선형 모양으로 시간의 무한한 흐름을 표현했다. 시계 뒷면에는 사파이어와 기계 작동을 볼 수 있는 투명 마감, 안도 타다오의 서명으로 완성했다.
200피스 한정 수량으로 제작된 BVLGARI 옥토 피니씨모는 티타늄으로 제작되었으며, 안도 타다오의 시그니처 노출 콘크리트의 건축적 이미지를 브랜드의 정교함에 녹여냈다. 워치메이커와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만남은 많은 컬렉터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지 않았을까.
알려다오, 안도 타다오 사복 패션
안도 타다오의 구조물은 깨끗하고 압도적인 무중력감으로 논리를 거스른다. 건축물만큼 정제되어 있는 건 다름 아닌 그의 패션. 어수선한 듯 침착한 그의 헤어스타일은 미니멀 무드의 스타일링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포털사이트에 그의 이름 다섯 자 검색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아이템은 부모님 옷장에서 훔쳐 입고 싶은 이른바 ‘아빠 양복’. 편안함과 맵시를 살려주는 터틀넥 니트, 혹은 셔츠.
여기에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드러내는 머플러까지.
시작은 미약 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안도 타다오는 할머니와 함께 자랐다. 어린 시절 그는 집 건너편에 위치한 목공소를 놀이터 삼아 시간을 보냈다. 학교 수업보다는 밖에서 스스로 배우는 것을 선호했던 안도 타다오는 2년간 프로 복서로 활동하게 된다.
이후 고등학교에서 도쿄로 여행을 가던 중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임페리얼 호텔을 보게 되고 건축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아 그는 프로 복싱 선수의 경력을 마침표 찍고 건축 일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권투는 순수한 금욕주의와 고독의 스포츠로 몸과 마음을 절대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힘이 생긴다. 건축도 똑같다. -안도 타다오
업계의 경험을 쌓기 위해 건축 사무소에 취직하지만, 이론에 무지했던 그는 건축 서적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전전긍긍 이직 시도를 거듭했지만 어떤 곳에서도 3개월 이상 버티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안도 타다오는 쓰린 좌절을 맛본다. 그러나 그가 여기서 모든 걸 포기했다면 지금, 이 콘텐츠를 쓰는 나도, 읽고 있는 당신도 존재하지 않았을 터. 안도 타다오는 고민 끝에 위대한 건축 작품을 보기 위해 세계여행을 하기로 결심한다. 책상 앞에 앉아 탁상공론에 머물지 않고 발로 뛰며 관찰과 영감을 통해 배우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세계 각국으로 떠난 안도 타다오는 8개월 동안 러시아 전역과 유럽, 아프리카, 남아시아를 거쳐 다양한 건축물을 경험했다. 전통적인 일본 건축에 익숙했던 그가 처음으로 마주했던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로마 판테온은 그야말로 경이로움의 연속이었다. 오사카로 돌아온 그는 29세에 자신의 건축 회사를 설립한다.
독립적인 작업을 시작한 독학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오사카 스미요시 지역의 좁은 부지에 작은 집을 설계하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그렇게 완성된 집이 바로 데뷔 작품 스미요시의 연립 주택, 아즈마 하우스 The Row House at Sumiyoshi(1976). 당시 일본 건축가들의 주거용 건물과 극명하게 대조되었던 아즈마 하우스는 일본 전통 가옥의 관습과 건축의 일상적 관행, 건축 방식을 뒤흔들어 놓았다. 안도 타다오는 데뷔작으로 1979년 일본 건축 학회상을 받는다.
Church of Water, Hokka
The Row House at Sumiyoshi
그는 여가 시간 또한 허투로 소비하지 않았다. 일본 간사이 지역을 돌아다니며 빈 땅에 대한 건설 계획을 세우곤 했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롯코 집합주택(Rokko Housing). 가파른 경사면을 보며 아무도 그 위에 집을 지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남들이 말하는 문제점은 오히려 안도 타다오에게 영감의 기준이 됐다. 경사면을 깎아 평평하게 할 생각조차 없었다는 그. 이런 작은 시도들이 건축계의 거장으로 일어설 수 있었던 핵심 자질 아녔을까.
Rokko Housing
안정되고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건축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경험도 없었으며 그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 멘토도 없었다. 대부분 건축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안도 타다오. 암 진단으로 십이지장과 췌장 등 장기를 제거하는 대수술을 여러 차례 받으며 장애물을 만나기도 했지만,
수술 이후 겸손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며 하루에 10,000보 이상 걷고 퇴근 후 헬스장에 간다는 그. 오히려 병으로 인해 얻은 게 더 많다고 말하며 건축과 삶에 대한 여전한 열정과 집념을 보여준다.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며 인생 마지막까지 힘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내면의 힘을 길러라.
형태의 단순화, 전례 없는 기하학적 모양과 비율, 빛과 바람의 고요함은 안도 타다오 언어의 일부다. 그 언어는 건축 산업에 머물러있지 않고 패션과 예술 경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새로운 도전을 계속 찾고 어떤 상황이든 항상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던 안도 타다오. 나는 그를 가히 ‘개척자’이자 ‘최고의 건축가’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