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Inuit
생존을 위한 이누이트 의복이 트렌드가 되기까지
패션과 문화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영감에 국경이 없듯, 패션은 세계 곳곳의 다양한 문화와 유산에 대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공허한 바람과 안개로 가득한 북극에서 꽁꽁 얼어붙은 얼음벌판을 용기 있게 탐험하는 자들, 이누이트는 옷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창조했을까. 그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얼음 덮인 땅, 북극의 민족
알래스카, 캐나다 북부, 그린란드에 거주하는 토착 원주민 이누이트족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았다. 기온이 -45℃ 이하로 떨어지는 혹한의 툰드라 기후 영향을 받는 이누이트족은 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한 두껍고 따뜻한 옷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을 것. 생존 문제와 직결되는 그들의 옷차림이 궁금해진다.
툰드라의 거친 황무지에서 농사를 짓고 식량을 재배할 수 없었던 이누이트족은 주로 바다표범, 북극고래, 순록 등의 동물을 사냥해 식생활을 해결했다. 그 중 우리가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건 바로 사진 속에서도 묵직함이 느껴지는 이누이트 파카다.
옷과 몸 사이 단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안감 모피의 털과 바깥쪽 털을 반대로 구성했으며, 파카 하단의 프린지 디테일은 바람을 차단하는 역할을 했다. 얼음 위에서 긴 시간 사냥을 하기 위해서는 방수를 위해 순록 가죽으로 만들어진 파카에 생선 기름을 발라 코팅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누이트족이 수천 년 동안 착용한 파카는 현재 엉덩이를 덮는 기장, 동물성 지방이나 어유로 처리해 방수 기능을 높인 내구성, 튼튼한 카라부와 후드, 내부 라이닝 특징을 고스란히 살려 근사한 탈바꿈을 마쳤다. 겨울철 서늘한 기운을 달래줄 이상적인 아우터웨어, 파카는 이누이트족이 후손들을 위해 남긴 최고의 선물 아닐까.
이누이트족의 독창적 테일러링
옷에 사용되는 가죽을 세심하게 선택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정교한 바느질이다. 끝나지 않을 추위와의 싸움이 계속되는 열악한 삶 속에서, 몰아치는 눈보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누이트족 여성들에게는 단 1mm의 틈도 허용치 않는 완벽과 가까운 재봉 능력이 요구되었다.
이누이트족에게는 옷이 따뜻해지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통기성 기능이 없다면 영하의 기온에서 옷이 땀에 젖게 되고 저체온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 그렇기에 순록의 힘줄로 꿰매는 전통적인 이누이트족의 스티치 기술은 마스터하기까지 몇 년이 걸리는 일이었다.
배나 카누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던 이누이트족에게 따뜻한 외투 다음으로 가장 필요했던 것은 빙하기의 추위에서 저체온증을 피할 수 있는 방수 파카였다. 방수 성능을 갖추면서 가볍고 튼튼했던 바다 속 포유류 내장을 사용해 외피용 방수 파카 캄레이카(Kamleika)를 만들었다. 내용물을 비운 후, 펌프로 팽창시켜 건조해 반투명해진 내장 튜브를 가로로 이어 붙혀 완성했다. 이누이트족에게 순록의 힘줄은 실로, 상아나 뼈는 바늘이 되었다.
바람을 막기 위해 얼굴 주위를 잡아 당기는 후드 디테일이 있는 캄레이카.
오늘날 우리가 흔히 아노락이라고 부르는 옷 또한 이누이트족들에게 발견할 수 있다. 아마우티(Amauti)는 물개나 순록 가죽으로 만들어졌으며,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아기를 안기 위해 제작되었다. 주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후드는 물기를 머금지 않아 천연 습기 방지 기능이 있는 울버린 모피를 사용했으며, 여성들이 아기를 추위에 노출하지 않고 모유 수유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일과 사냥을 하는 동안에도 아기를 따뜻하고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어 엄마와 아이가 유대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여겨졌다.
1930년대 아마우티 형태의 코트가 서양 문화에서 유행하기 시작했고 ‘아노락’이라는 단어가 영어에 통합되었다. 아노락은 하이킹, 러닝 및 야외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가벼운 소재와 패딩 충전재, 휴대폰과 같은 작은 소지품을 보관하는 앞주머니, 큼지막한 후드까지. 레이어드 센스가 발휘되어야 하는 겨울철, 아노락만큼 다재다능한 아이템은 없을 것.
부츠 한 켤레에 담긴 사랑
카믹(Kamiks)은 바다표범이나 순록 가죽으로 만든 이누이트족의 수제 부츠다. 순록 피부는 뛰어난 단열 기능을 제공하며, 바다표범의 가죽은 방수 기능이 있기 때문에 두 개의 가죽을 조합하여 다양한 기상 조건에 적합한 카믹을 생산하거나 사냥의 장소에 따라 상황에 맞는 카믹을 착용했다. 이 신발은 가볍기 때문에 사냥꾼이 사냥감에 조용히 접근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장해 준다.
카믹은 동물 가죽을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해 바다표범 또는 순록 가죽이 원하는 유연성의 정도와 모양이 될 때까지 치아로 씹으며 가죽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단계를 거친다. 가죽이 두껍기 때문에 뛰어난 봉제 기술과 힘, 인내가 필요했으며 부츠를 제작하는 과정이 매우 길고 복잡했기에 가족을 위해 만든 카믹에는 북극권 눈처럼 소복이 쌓인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카믹 부츠를 만들기 위해 물개 가죽을 치아로 씹는 소녀의 모습
또한, 카믹에는 이누이트족의 혈통, 성별, 능력 및 지역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식이 포함되어 있는데, 전통적으로 남성과 소년의 카믹에는 수직 패턴, 여성과 소녀의 카믹에는 수평 패턴의 장식을 발견할 수 있으며 재봉사와 이누이트 지역에 따라 상아, 구슬 장식, 프린지 등 다양하게 나뉘는 요소가 특징이다.
스키장 슬로프를 거닐어야 할 것 같은 볼륨감 있는 트리밍, 퍼 부츠가 오늘날 화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누이트족의 바다표범 부츠를 따라잡을 높은 기능성을 자랑하진 않지만,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힙함과 보온 두 마리의 토끼를 가뿐하게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바느질 달인의 손에서 탄생한 장신구
이누이트에게 방한 용품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대부분의 아우터에는 후드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별도로 모자를 따로 착용하지 않았지만, 얼굴 다음으로 외부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두 손을 눈보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장갑은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아이템이다.
물개 가죽 겉감과 양모 안감으로 구성되거나 순록 가죽을 사용해 수제로 제작되었다. 장갑의 손바닥 부분은 표면의 털을 제거한 가죽을 배치해 그립감을 높였으며 장갑에 긴 끈을 더해 목에 걸칠 수 있도록 해 잃어버리는 것을 방지했다. 엄지손가락만 따로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네 손가락은 함께 모여있는 ‘벙어리장갑’ 디자인을 가장 많이 이용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을 빠른 시간 안에 녹일 방법은 바로 겨울 장갑이다. 알록달록 다채로운 컬러의 장갑은 바라만 봐도 기분 좋아지는 아이템 아닐까. 올 블랙 코디에는 채도 높은 니트 장갑으로 포인트를 주기 좋다. 무의식적으로 코트 속 주머니로 들어가는 손이 밖으로 나와도 두렵지 않을 거다.
오늘날 이누이트족은 광업, 석유 및 가스, 건설을 포함한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다양하게 일하고 있다. 원주민 이누이트의 삶은 지난 세기 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그들의 전통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이누이트족의 언어 이누크티투트어는 여전히 북극의 많은 지역에서 사용되며, 이누이트의 젊은 세대는 생계유지를 위해 현대사회와 전통적 유산 사이의 갈등 문제에 여전히 맞닿아 있다.
보존된 이누이트족의 문화유산
수십 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우터를 생산하는 캐나다 브랜드 CANADA GOOSE는 강인한 이누이트족에게 영감을 받아 새로운 종류의 아웃도어를 선보였다. ‘Project Atigi’는 이누이트족이 가장 혹독한 기후와 조건에서 살 수 있게 해 준 장인 정신의 전문성과 풍부한 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진행됐다.
18명의 이누이트 재봉사가 만든 90개의 맞춤형 제품이 컬렉션에 녹아들었다. 각 디자이너는 제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누이트 장인 정신을 그대로 반영해 아마우티에서 영감을 받은 파카부터 밤하늘을 나타내는 오로라 색상 팔레트, 이누이트족 타투 트리밍 등 상징적인 특징을 현대적인 실루엣에 더해 컬렉션을 완성했다. 모든 판매 수익금은 캐나다에서 이누이트의 권리와 이익을 옹호하는 국가 조직인 ITK(Inuit Tapiriit Kanatami)를 통해 이누이트 커뮤니티에 전달됐다.
모진 세월을 버텨온 이누이트족들은 좀처럼 길을 잃지 않는다. 얼음과 하늘이 어우러진 아득한 수평선에서도 그들이 돌아갈 목적지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평생 추위와의 싸움에서 사느냐 죽느냐 목숨이 달린 이누이트족들에게 옷이란 동물의 희생과 맞바꾼 자연의 신성함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현시점 수많은 패션 브랜드가 추구하는 목표와 옷이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