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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Crochet
실패 없는 여름 트렌드



하루 종일 손뜨개질로 시간을 보내던 엄마는 조끼부터 시작해 가방, 모자, 식탁보, 쿠션과 소파 커버 등 수많은 홈 컬렉션으로 집안의 모든 걸 덮어내곤 했다. 엄마의 손끝에서 탄생한 뜨개물들은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시간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의미에서 오트 쿠튀르 그 이상의 가치였다.

따뜻하고 찬란한 기억이 피어오르는 크로셰 아이템은 패션계에도 눈부신 추억을 쌓았으니. 나를 미소 짓게 하는 크로셰, 그 속에 쌓인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가 보자.



미국 시트콤 빅뱅 이론(The Big Bang Theory)




크로셰는 손으로 하는 뜨개질의 한 종류를 일컫는 말로, 흔히 알고 있는 긴 막대기 대바늘이 아닌 바늘 끝에 갈고리가 있는 코바늘을 사용해 뜨개질한다.

그럼, 크로셰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정답은 바로 프랑스. 후크 또는 갈고리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크로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크로셰가 펼쳐낸 서사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크로셰 붐은 온다

모든 것에는 처음이 있다. 크로셰 붐이 찾아온 것 또한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으니, 그 배경을 알기 위해 잠시 시간을 거꾸로 역행해 보자.






크로셰 니트의 출발점은 중세 유럽, 고대 이집트 등 제각각으로 기원을 명확하게 풀이할 수 없지만, 1823년 네덜란드 예술 잡지 ‘Penélopé’에서 크로셰 뜨개질로 만들어진 제품이 소개되며 19세기 초 본격적인 크로셰의 시대가 열렸다.

19세기, 레이스는 귀족과 부르주아 복식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레이스를 비롯해 값비싼 천을 대체하기 위한 대안이 바로 크로셰 뜨개질이다. 때문에 당시 크로셰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수단으로 판단되었던 것. 허나 크로셰를 향한 계층적 배경을 180도 뒤바꾼 인물이 있었으니, 영국을 최고의 황금기로 만들었던 빅토리아 여왕(Queen Alexandrina Victoria)이다.

1841년부터 1845년까지, 5년간 아일랜드에서 일어났던 감자 대기근은 아일랜드인 1백만 명을 굶주려 죽게 만들어 19세기 유럽의 참혹한 사건 중 하나로 언급되곤 한다. 감자를 주식으로 했던 아일랜드인들에게 퍼진 감자 잎마름병은 많은 이들의 생계에 침투했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던 아일랜드인들은 크로셰 뜨개질로 가내 공업을 설립했고 빅토리아 여왕이 아일랜드 지역 사회를 지원하기 위해 크로셰 레이스를 구입한 것. 그러자 크로셰 레이스의 지위는 단숨에 상승했고, 부유한 계층의 여성들은 뜨개물을 사용해 외모를 단장하기 시작했다.




뜨개질을 하는 빅토리아 여왕, ©etsy.com, 크로셰 니트 커프스와 장식을 한 19세기 여성





시간의 흐름에 따라 크로셰 뜨개질의 스티치는 더욱 정교해졌으며 새로운 질감과 장식 디테일의 변주를 더했다. 그렇게 패션과 함께 성장한 크로셰는 1900년대 초 미국과 영국 사람들의 마음을 강타했다.

크로셰 하면 바로 떠오르는 스퀘어 크로셰는 의류, 가방, 스카프, 모자, 담요, 장식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크로셰 뜨개질을 담은 잡지가 쏟아졌다. 황금기로 불릴 만큼 크로셰의 탁월한 명성을 모두가 인정한 시기다.




크로셰 니트 베스트를 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스퀘어 크로셰, 크로셰 니트 베스트를 입은 비틀즈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다시 부활한 크로셰

1980년대는 펑크, 프레피룩을 비롯해 맥시멀리즘이 트렌드로 접어들며 크로셰는 자연스럽게 하락세를 걸었다. 공예가 점점 옛것으로 여겨지고 학교에서 배우던 실 공예 수업이 뜸해지며 실과 바늘의 수요도 줄었다.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던 크로셰의 스티치 수작업을 기계가 대신하게 되며 소비자는 저렴하고 빠르게 만들어진 아이템에 대한 접근이 쉬워진 것이다.

패션과 기술은 빠른 속도로 변화했고 새로운 세대는 뜨개질 공예보다 시대에 맞는 현대적인 걸 원했다. 크로셰가 대중에게 선택되기까지 결정적 요인 빅토리아 여왕이 있었듯, 잠잠해진 크로셰 뜨개질을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든 건 다름 아닌 팬데믹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이들의 외부 활동이 제한되었으며,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뒷전으로 밀렸던 뜨개질에 시선이 집중됐다.




JW Anderson 크로셰 니트 카디건을 착용한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뜨개질이 살아남는 법


2020년 2월 NBC 투데이쇼 리허설에서 착용했던 JW Anderson의 패치워크 카디건은 순식간에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그의 팬들은 팬데믹 기간 동안 #harrystylescardigan 해시태그를 사용하여 뜨개질하는 영상을 업로드했고, JW Anderson 창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은 챌린지에 깊은 인상을 받아 패치워크 카디건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도록 패턴과 튜토리얼을 공개한 것.

해당 카디건은 영국 V&A 박물관에 전시되었으며, 더 나아가 총 300시간 이상 시간을 투자해 구현된 디지털 카디건은 NFT 경매에서 약 7,500달러에 낙찰되어 수익금이 LGBTQ+자선단체인 AKT에 기부되었다.





패션계가 주목하는 크로셰


외면당하던 뜨개질이 수면 위로 당당하게 자태를 드러내며 패션 산업도 크로셰의 존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2023 SS 컬렉션 문을 세차게 두드렸던 오색찬란 실타래의 향연을 들여다보자.


Proenza Schouler

심플 이즈 베스트, 여름과 흰색의 조합이 내는 긍정적인 시너지를 사랑하는 이들이여 고개를 들어 Proenza Schouler 2023 SS 컬렉션을 보라! 그물 형태로 짜여진 크로셰 니트를 과감하게 접목해 별다른 포인트 없이도 감각적인 무드를 느낄 수 있다. 지금 당장 해변으로 향해야 할 것 같은 켄달 제너(Kendall Jenner)의 올 화이트 룩, 그중에서도 밑단 프린지 디테일의 크로셰 스커트는 스윔웨어와 함께 연출하기 제격이다.






촘촘하게 짜인 뜨개질 사이로 은은하게 드러나는 실루엣은 관능과 발랄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작정하고 꾸미고 싶은 날, 금빛으로 물든 크로셰 원피스가 날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리라.









Acne Studios

크로셰 니트가 뻔하게 느껴진다면?

Acne Studios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니 요한슨(Jonny Johansson)은 크로셰에 고리타분함을 느끼는 이들을 위해 ‘어서 와. 널 위해 준비했어.’라고 속삭이는 듯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색감 장인 Acne Studios의 위트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크로셰 니트웨어. 머메이드 라인의 스커트가 다소 부담된다면 넥라인 그리고 커프스에 포인트를 준 크로셰 니트 탑으로 아웃핏의 로맨틱함을 끌어올려 보자.









HED MAYNER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 오후. 검고 빨갛게 그을린 피부가 꺼려진다면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아이템이 바로 썸머 니트. 숭숭 뚫린 크로셰 니트 사이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스칠 때만큼 기분 좋은 게 없다.

여름이라 무조건 반팔을 고집하는가? 그렇다면 올해는 어깨선이 아래로 툭 떨어진 루즈핏 크로셰 니트를 고려해 보길 바란다. 편안함은 물론이고, 에어컨에 의한 냉방병과 모기로부터 팔을 보호할 수 있는 건 덤!

HED MAYNER는 모래사장을 연상하는 밝은 베이지 컬러 니트를 화이트, 브라운 컬러와 함께 매치해 차분한 분위기를 담았다.










Casablanca

죽기 전 지중해에서 휴양을 보낼 수 있게 된다면 가방에 어떤 옷을 챙길까? 누군가 묻거든 Casablanca의 2023 SS 컬렉션을 보여주고 싶다. 스포츠 웨어에서 영감을 받은 실루엣과 북아프리카를 연상시키는 무지갯빛 컬러의 다채로운 아이템에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그냥 지나치기엔 다소 눈에 띄는 크로셰의 존재감을 들여다보자. 첫 번째로, 셔츠와 아우터를 겸할 수 있어 두말할 나위 없는 활용도를 자랑하는 크로셰 카디건. 실크 셔츠보다 유니크하고 활기를 뽐내는 아이템을 찾는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카디건으로는 부족하다. 과감함의 단계를 높이고 싶다면 크로셰 탑으로 풍부함을 채워보자. 덜어낼수록 풍성해지는 여름 스타일링의 묘미를 마음껏 누려보는 것! 노출이 부담된다면 하의에 포인트를 살려보는 것도 방법이다. 꽃피운 듯 화려한 크로셰 니트 팬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면 내 안에 고요히 잠들어 있던 오감이 살아나지 않을까.








Jil Sander

단순함과 간결함을 두 가지 키워드를 누구보다 잘 표현하는 브랜드 JIL SANDER는 도시 변두리에 비밀 정원을 만들고 비와 함께 패션쇼를 진행했다. 74개에 달하는 많은 착장 중에서도 크로셰 니트는 이목을 단숨에 집중시킨다. 얇고 촘촘한 크로셰 니트와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볼드한 짜임의 크로셰 니트가 스타일링의 주도권을 꽉 잡고 있다.







스팽글 디테일이 더해진 파스텔 톤 실타래가 원피스로 변신했다. 싱그러운 라일락 향기가 날 것 같은 크로셰 원피스를 쨍한 레드 컬러의 백과 함께 연출해 임팩트를 살렸다. 니트와 원피스, 모두 내키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크로셰 가방이 있다. 심플함으로 통일감을 준 착장 위에 크로셰 토트백을 매치해 부드러움을 더해 완성해 보자.








ALANUI

이탈리아 럭셔리 니트웨어 브랜드 ALANUI. 앞서 소개한 크로셰 아이템 대부분을 ALANUI 2023 컬렉션에서 발견할 수 있다. 크로셰 카디건을 시작으로 숏 팬츠, 슬리브리스 원피스, 크롭 탑, 스커트, 버킷햇까지 크로셰 니트로만 구성된 스타일링을 원하는 이들에게 좋은 레퍼런스가 되어 줄 것.







다양한 뜨개질 기법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패턴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ALANUI.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 재생 섬유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BODE

BODE가 건네는 매력 포인트를 패치워크 하나만 인지하고 있다면, 이번 기회에 BODE의 크로셰 니트를 면밀히 살펴볼 것! 이토록 낭만적이고 사랑스러운 크로셰 니트라니, 할머니 소리를 들어도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밝으면 밝을수록, 색깔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햇살 아래 칙칙한 옷차림을 피하고 싶다면 포인트 컬러를 추가해 얼굴 톤도 화사하게 바꿔보자.









베스트 크로셰 드레서


컬렉션에 녹아든 크로셰 니트에게 묘한 매력을 느꼈다면 이제 그 매력을 누구보다 잘 수용한 이들의 스타일링을 참고해 보자. 별생각 없이 바라보았던 크로셰 아이템이 더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켄달 제너의 크로셰 사랑을 들여다보자. 어떤 옷을 어떻게 입어도 예쁠 것 같은 몸매와 외모의 소유자이지만, 냉정하게 스타일링만 보아도 충분히 참고할 만한 요소가 있다. 브이넥 크로셰 니트는 화이트 진과 벨트, 플랫슈즈로 심플한 느낌을 살렸다. 귀여운 플라워 자수가 더해진 크로셰 니트 탑은 와이드 핏의 슬랙스, 로퍼와 함께 매치해 무심하지만 센스 있는 아웃핏을 완성했다.







크로셰 니트를 좀 더 사랑스럽게 연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면 탑과 카디건 셋업으로 연출한 켄달 제너 패션을 보자. 데님과 함께 매치해 간결하면서도 유니크한 아웃핏으로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크로셰 니트에 어떤 하의를 매치해야 좋을지 고민된다면 ‘톤 온 톤(ton on ton)’ 패션 공식을 이용해 볼 것. 원피스라면 가방과 신발의 컬러를 맞춰 포인트를 주는 것도 방법이다. 두아 리파(Dua Lipa)는 화이트 크로셰 원피스와 함께 볼드한 네크리스, 라임 백 & 슈즈를 매치했다.




과감하고 다채로운 스타일링을 선보이며 옷 좀 입는다는 두아 리파. 그녀의 피드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크로세 니트와 스윔웨어의 조합이다. 남들보다는 좀 더 관능적이고 뜨거운 여름을 즐기고 싶다면 스윔웨어 그리고 크로셰 원피스 페어링으로 강렬한 룩을 완성해 보자.






촘촘하게 짜여진 크로셰 베스트의 진정한 묘미는 단품으로 즐기는 게 아닐까?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떨어질지 모르는 애매한 코튼 소재를 벗어나고 싶다면 크로셰 니트로 눈길을 돌려보길.

해리 스타일스 ‘Watermelon Sugar’ MV








크로셰 뜨개질은 기계로 복제할 수 없는 유일한 공예 중 하나다. 하나의 실타래가 엮이며 피어나는 아름다운 패턴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사랑을 담아 수작업으로 한 땀 한 땀 이루어지는 크로셰 스티치를 모두가 향유하는 그날까지. 포에버 크로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