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Low Rise
이유 있는 역주행
패션도 음악처럼 실시간 차트가 존재한다면 로우라이즈는 아마 작년부터 꾸준히 차트 상위권을 휩쓸며 ‘패션 차트 올킬’, ‘패션 차트 고공 행진’ 타이틀로 연일 역주행 화제를 모았을 게 분명하다. 작년이 Y2K에서 시간을 거슬러 온 로우라이즈 트렌드를 인지하는 과정이었다면, 올해는 자신에게 꼭 맞는 로우라이즈 아이템을 찾아내고 트렌드를 만끽할 때다.
로우라이즈의 아버지, 알렉산더 맥퀸
MIU MIU 2022 SS 컬렉션 공개된 이후 줄기차게 언급된 Y2K 패션, 그 중심에 위치한 코어 아이템 로우라이즈는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로우 라이즈 신호탄을 쏘아 올린 이는 바로 알렉산더 맥퀸(Lee Alexander McQueen). 그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를 졸업한 후 1993년 첫 번째 컬렉션 ‘Taxi Driver’에서 아찔함과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한 범스터(Bumster) 팬츠를 세상에 선보였다. 고정관념을 완전히 벗어던진 알렉산더 맥퀸의 범스터 팬츠는 당시 언론과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충분했다. 범스터 팬츠는 알렉산더 맥퀸의 생전 컬렉션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며 브랜드의 시그니처 룩으로 자리 잡았다.
1996 FALL RTW 컬렉션에서 범스터 팬츠를 착용한 케이트 모스(Kate Moss).
(왼)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
"범스터 팬츠로 엉덩이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몸을 길게 만들고 싶었다. 나에게 신체의 그 부분, 엉덩이가 아닌 척추 아래쪽은 성별을 떠나 누구의 몸에서든 가장 에로틱한 영역이다.” - 알렉산더 맥퀸 (1995)
로우라이즈의 화려한 귀환을 그가 지켜봤다면 어땠을까? 전통과 무질서 사이의 균형을 찾아 시그니처 스타일을 만든 알렉산더 맥퀸. ‘천재 디자이너’라는 수식어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로우라이즈, 이유 있는 역주행
범스터로 로우라이즈 신호탄을 쏘아 올린 알렉산더 맥퀸의 바톤을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가 넘겨받았다. 2021년 10월에 공개된 MIU MIU 2022 SPRING RTW 컬렉션은 순위 밖을 하염없이 맴돌던 ‘로우라이즈’ 키워드를 단숨에 차트 상위권으로 진입시킨 것.
패리스 힐튼(Paris Hilton),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등 2000년대 초반 미국의 패션 아이콘에서만 볼 수 있었던 추억의 로우라이즈를 스커트와 결합했으며, 허리라인 실루엣을 강조한 크롭탑과 함께 연출해 임팩트를 극대화했다.
MIU MIU 2022 SPRING 컬렉션은 공개와 동시에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로우라이즈는 모든 체형을 포용하는 패션 아이템이 아닌, 모델처럼 마른 몸의 특정 체형만이 로우라이즈를 즐겨왔다는 간단한 이유다.
그러나 오늘날 로우라이즈 트렌드는 사뭇 다르다.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는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움직임이 꾸준히 확산되면서 다양한 시각과 관점으로 로우라이즈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정형화된 사이즈 기준을 벗어난 플러스 사이즈 모델, 팔로마 엘세서(Paloma Elsesser)는 MIU MIU 컷 아웃 크롭 탑, 로우라이즈 스커트를 착용해 i-D 커버를 장식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2022 FALL, 2023 SPRING 컬렉션에서도 고유의 방식으로 로우라이즈를 보란 듯 이어나갔다. 보다 더 다양한 소재와 과감한 디테일을 곁들여 말이다. 2022 SPRING 컬렉션이 클래식한 테일러링 스타일이었다면, 2022 FALL 컬렉션에서는 반항 정신이 더욱 강조되었다.
MIU MIU 2023 SPRING COLLECTION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로우라이즈가 트렌드의 반열에 오른 건 2022년이지만, 올해도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23년 어떤 방식으로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JACQUEMUS 2023 SPRING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받아 서정적인 분위기를 표현하는 브랜드 JACQUEMUS가 선보인 로우라이즈는 역시나 로맨틱함이 묻어져 있다. 로우라이즈를 입으려면 깔끔함과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말하듯 디테일을 한가득 가미했다. 크림 컬러의 데님 진에는 은은한 펄의 실버 소재를 덧입혀 스틸레토 힐과 함께 매치했고, 라피아 스티치로 위트를 살린 블루 데님과는 캐주얼한 탑으로 로우 라이즈를 한층 경쾌하게 연출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힙합과 스케이트 문화에서 대중화된 새기 팬츠(Saggy Pants)라고 할 수 있겠지만, 로우라이즈 스타일링에 소소한 팁이 되어 줄 것이다.
DIESEL 2023 RESORT
글렌 마틴스(Glenn Martens)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며 주가가 급등한 DIESEL은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브랜드’에서 ‘다시 돌아온 DIESEL’로 새로운 타이틀을 얻었다.
MIU MIU가 로우라이즈를 팬츠가 아닌 스커트로 변주를 했다면, DIESEL은 바이커 팬츠, 쉬어한 소재의 미디스커트, 가먼트 다잉 워싱으로 빈티지 무드를 극대화한 데님 등 다양한 소재와 벨트 액세서리로 레트로 스타일을 완성했다. 로우라이즈와 DIESEL, 그야말로 찰떡 케미를 이룬다.
Alexander McQueen 2023 SPRING
컬렉션이 풍부한 컬러로 로우라이즈 팬츠를 물들이고 있던 시점, Alexander McQueen은 흠잡을 데 없는 날렵한 실루엣의 테일러링과 ‘이 구역의 가장 시크한 스타일은 바로 나’ 라고 속삭이는 듯 올 블랙룩을 선보인 것. 로우 라이즈의 오리지널 브랜드 답게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극단적인 밑위 기장의 팬츠로 가장 주목할 만한 모티프를 제공했다.
Martine Rose 2023 FALL
일상에서 로우라이즈를 가장 트렌디하게 즐기고 싶다면 고개를 들어 Martine Rose 2023 컬렉션을 바라보자. Martine Rose의 정체성인 1990년대 런던의 테크노, 펑크 등 서브컬처가 이번 컬렉션에도 영감의 서재가 되었다. 빈티지 가게에서 막 찾아낸 듯한 의류는 Martine Rose 식으로 현대화되었는데, 로우라이즈 활용이 제법 눈길을 끈다.
셋업으로 나온 브라운 로우라이즈 팬츠는 파스텔 톤의 니트와 함께 매치해 웨어러블한 접근이 돋보이며, 다소 올드해 보일 수 있는 로우라이즈 진을 단순 깔맞춤이 아닌 청청 패션과 타이로 포인트를 더했다.
Dsquared2 2023 FALL
Y2K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추억의 브랜드 Dsquared2 또한 로우라이즈행 열차에 탑승했다. 쌍둥이 듀오 디자이너 딘(Dean)과 댄 카튼(Dan Caten)은 맥시멀리스트 스타일에 로우라이즈를 더해 과감하고 개방적인 컬렉션을 펼쳐냈다. 골반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로우라이즈가 트렌드로 등극하며 언더웨어가 함께 주목받게 되었는데 그 요소를 컬렉션에 고스란히 담아낸 Dsquared2.
Coperni 2023 RESORT
TikTok은 로우라이즈를 2022년 가장 많이 본 패션 트렌드 아이템으로 꼽았다. 1억 2,300만 조회수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로 말이다. 더불어 한 해 동안 로우라이즈 키워드 검색량이 지난해 대비 57% 증가했다고 하니 좋으나 싫으나 이제는 로우라이즈를 트렌드로 확실히 인정해야 할 때.
한없이 짧은 밑위가 어색하다면, 우리에게는 미드라이즈라는 좋은 선택지가 있다. 성급하지 않게 미드라이즈부터 시작해보자. 로우라이즈 트렌드에 잉크 번지듯 은근히 스며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자, 이제 어떤 패션 트렌드를 즐기고 싶은지 본인 스스로의 결정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