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Skirts Over Pants
바지 위에 치마 얹기
온전한 하나보다 둘이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멀끔하게 재단된 셔츠 위에 반항심 가득한 웨스턴 무드의 베스트를 껴입어 본다거나, 심플한 슬리브리스 티셔츠 위에 살갗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어 소재의 테일러드 재킷을 매치한다던가. 패션도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다. 독주의 한계가 있다는 것.
누구나 시도하고 있는 레이어링을 벗어나 치마와 바지를 겹쳐 입는 새로운 레이어드룩에 도전해 보자. 지금은 바야흐로 N겹시대.
수년동안 존재해온 레이어링의 조합.
레이어드는 ‘층으로 이루어진’ 또는 ‘층이 있는’이라는 의미로 다양한 요소가 여러 층으로 쌓여 있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다. 의복 문화에 레이어드라는 단어가 접목된 것은 인간의 원초적 감각과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추위’를 느끼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옷을 여러 겹으로 껴입게 되기 때문이다. 즉, 내가 단순히 껴입는 게 싫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의복의 레이어링과 외면한 채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의복은 기능적인 목적보다 자신의 개성과 스타일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단순히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껴입는 레이어드 룩, 이 글을 읽는 순간만큼은 잠시 잊어도 좋다.
세기말, 그 시절 언니들.
앞으로 봐도 옆으로 봐도 범상치 않은 바지 위 치마 얹기. 이 패션 트렌드가 길 가다 갑자기 하늘에서 툭 하고 떨어졌을 리 없다. 그렇다면 트렌드의 시작을 파악하기 위해 어느 시기를 살펴보면 되는 걸까? 오늘날 주류와 비주류 사이 언저리에서 종횡무진 대활약을 펼치고 있는 2000년대 세기말의 Y2K 패션. 그 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2000년대의 패션 아이콘을 들여다보자.
누군가는 스커트 오버 팬츠를 이렇게 말했다. ‘돌아오지 않길 바랐던 패션 트렌드’ 라고. 하지만, 그 시절은 지금과 달랐다. 아찔한 밑위 길이의 로우 라이즈 팬츠와 미니스커트, UGG 부츠, 카고 디테일, 얼굴의 반을 가리는 그라데이션 쉐이드 선글라스, 카모플라쥬 패턴까지 이 모든 것은 당시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아이템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버무려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했던 그 시절 언니들이 있었으니.
“잘 봐 이게 바로 Y2K 패션이야.”를 외치듯 확신의 세기말 패션을 자랑하는 할리우드 언니 애슐리 티스테일(Ashley Tisdale). 2000년대 초반 패션 필수 아이템이 궁금하다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라. 배꼽 밑까지 내려오는 십자가 목걸이, 스팽글로 뒤덮인 비니 모자, 퍼 볼레로부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엄청난 아우라의 패션 아이템을 과감하게 소화했던 애슐리 티스테일. 2000년대 패셔니스타로 통했던 애슐리 티스테일도 놓치지 않았던 스타일이 있었으니. 바지와 치마 레이어링이다.
제일 눈에 띄는 건 다름 아닌 하의 레이어드. 워싱진 위에 스팽글 스커트를 입고, 주얼리와 플랫 슈즈를 스커트와 함께 깔맞춤했다. 당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코디는 벌칙 의상에 가까워 보이지만, 잊지 마시길! 2000년 트렌드세터의 시사회 패션이라는 것을.
애슐리 티스테일의 하의 레이어링 변주는 다채로움 그 자체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언발란스 슬리브리스 원피스를 진과 매치하는 과감함, MIU MIU 로우라이즈 스커트를 연상케 하는 미니스커트와 7부 기장의 슬랙스, 쨍한 민트 컬러의 슬립과 디스트로이드 진까지. 그저 Y2K 패션이라고 정의하기엔 명쾌한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어나더 레벨 패션을 남긴 애슐리 티스테일.
하이틴 영화 한나 몬타나(Hannah Montana)로 국민 여동생 수식어를 차지한 마일리 사일러스(Miley Cyrus). 지금의 반항적 이미지와는 달리 틴 팝스타답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가 돋보였던 유년 시절 마일리도 레이어드 패션을 즐겼다. 애슐리 티스테일처럼 길게 내려오는 스커트는 아니지만 데님과 슬리브리스 탑을 함께 매치해 영락없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레트로 패션을 확인할 수 있다.
SNS 피드를 내리다 보면 미니 원피스와 레더 재킷 조합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2000년대 초반은 조금 다르다. 미니 원피스에 다름 아닌 바지를 매치하는 것. 그게 당시 암묵적인 패션 공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환해 본 세기말 언니들, 왼쪽부터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 캐서린 헤이글(Katherine Heigl), 제시카 알바(Jessica Alba).
새로운 도약을 위한 지침서.
돌고 도는 패션. 세기말 Y2K 패션이 패션씬을 장악한 건 제법 오래된 일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바지 위 치마 입기가 일상에 도래했다는 사실.
그 어떤 트렌드보다 흥미로운 하의 레이어링,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본격적인 바지 위 치마 입기를 실천하기 전, 패션 브랜드가 선보인 하의 레이어링을 단숨에 독파해 보자. 처음 느꼈던 낯설었던 감각은 눈 녹듯 자연스러워지고 옷장 앞에 멍하니 서서 보내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Sacai 2023 SS, Proenza Schouler 2023 SS
Louis Vuitton 2022 Spring Ready-to-Wear
Chloé 2022 Fall Ready-to-Wear
Chopova Lowena 2023 SS, Sandy Liang 2022 SS
스커트 팬츠 레이어드 최다 등장 컬렉션은 다름 아닌 FENDI 2023 FW. 그리고 그 중심에는 현재 FENDI 우먼즈와 쿠튀르를 맡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킴 존스(Kim Jones)가 있다. 그는 우리의 마음을 정확히 간파했다.
바지와 치마를 하나로 합친 것. 바지 위 플리츠 스커트는 버클로 고정해 마지 바지 위에 치마를 겹쳐 입은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하의 레이어드를 그저 촌스럽게만 받아들였던 나에게 넓은 시야와 관점의 탈피를 도와준 기특한 컬렉션이다.
FENDI 2023 FW
하의 레이어드, 그 강렬한 존재감.
아직까지 바지 위 치마 입기가 두려운가? 그렇다면 우리에겐 트렌드세터가 있다. 하의를 두 겹 겹쳐 입고 위풍당당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그들의 자태를 보라. 우리가 배울 건 그들의 스타일링 그리고 새로움을 마주하는 용기.
Cecilie Bahnsen
리한나, 벨라 하디드, 지지 하디드
Cecilie Bahnsen
Chopova Lowena, Kiko Kostadinov x Hysteric Glamour
Peter Do, R13
자,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제는 실전이다. 레이어링 기술에 옳고 그른 방법은 없다. 충분히 입었다고 생각할 때 한 장 더 겹쳐 입어 나만의 스타일에 흥미를 더해보는 것이 바지 스커트 트렌드의 전부다.
바지 위 치마 입기, 하의 레이어링의 가능성은 당신의 상상 그 이상의 무궁무진함을 품고 있다. 무엇을 입느냐보다 어떻게 입느냐에 초점을 맞춰 N겹시대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려보자.